이대섭 기자

“고환율'에 자영업자·유학생 가족 시름 환율은 왜 1500원을 향하나“
경상수지 흑자 행진과 국내 증시 활황세에도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급등(원화 가치 하락)하며 1500원 선(線)마저 위협하자 시장에서는 기존의 ‘환율 공식’이 깨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기존엔 무역에서 흑자가 나고 주가가 오르면 환율이 떨어지는 게 공식이었다.
과거와 달리 이 같은 달러 공급을 넘어서는 달러 수요가 국내 외환 시장에 생겼다는 것이다. 정부는 굳어진 ‘원화 약세’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서울 종로구에서 8년째 스테이크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차모(42)씨는 최근 고공행진하는 원·달러 환율 때문에 직격탄을 맞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원화 약세로 음식의 주재료인 호주산·미국산 소고기의 수입물가가 크게 오른 탓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식품산업통계정보(FIS)에 따르면 9월 초까지 100g당 4,990원 수준이던 호주산 갈비살의 국내 원료가격(수입물가에 국내 유통 비용 등을 더한 값)은 이달 중순부터 약 17.7% 오른 5,874원을 유지하고 있다.
차씨는 "1인분 가격을 1만2,000원에서 1만3,000원으로 올렸는데 여기서 더 비싸게 팔면 손님들이 안 올 것"이라고 토로했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 진입을 눈앞에 두면서 수입 재료에 의존하는 자영업자부터 유학생 가족, 해외 여행객 등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24일 원·달러 환율은 1,477.1원에 주간 거래를 마감했다.
미국 관세 인상과 미중 무역 갈등 우려로 4월 9일 기록한 연중 최고치(1,484.1원)에 거의 근접한 수준이다. 한국은행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한국의 실질실효환율 지수는 지난달 말 기준 89.09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다.
실질실효환율은 한 나라의 화폐가 상대국 화폐보다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가졌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기준 시점(2020년=100)을 넘으면 고평가, 낮으면 저평가로 간주한다. 현재 원화의 실질 가치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당히 떨어져 있다는 의미다.
정부는 쪼그라든 원화 수요를 되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개인과 기업이 자발적으로 달러를 팔고, 원화를 살 가능성이 높지 않은 만큼 인위적으로 달러 공급을 늘리고 원화 수요는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외환시장 큰손인 국민연금에 달러를 시장에 팔아달라고 요청하고, 수출 기업에는 압박과 함께 당근책을 제시하며 시장에서 원화를 사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만, 수출 비중이 절반을 넘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정책 혜택을 보려고 달러를 원화로 환전할 일은 없을 것”이라며 “눈치 보면서 어느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업의 원화 환전을 지원하기 위해 기업의 달러 거래를 대행하는 은행의 달러 중개 거래 관련 한도를 늘리는 방안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이 위기에 대비해 의무로 보유해야 하는 달러 비율을 일시적으로 낮추는 방안도 들여다보고 있다.
당장 달러가 필요한 유학생 학부모와 해외 여행객은 더 고민이 깊다. 미국 뉴욕에서 유학 중인 대학생 아들을 둔 최모(58)씨는 "매년 7월과 11월에 학비로 각각 3만 달러를 내는데 환율이 1,300원대 후반인 여름엔 약 4,100만 원이면 됐지만 이번에는 4,400만 원 넘게 송금해야 한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내달 일본 여행을 앞둔 강석희(24)씨도 "평소 여행 땐 면세점에서 향수, 화장품 등을 20만~30만 원어치 구매했는데 요즘은 달러가 비싸 백화점가와 면세가의 차이를 모르겠다"며 "미국 여행은 당분간 꿈도 못 꿀 지경"이라고 했다.
강달러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이가 큰 데다 관세 협상 여파로 국내 기업들이 당분간 달러를 국내로 들여오지 않고 미국 내에서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원·달러 환율 1,450원대 이상이 '뉴노멀'인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