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섭 기자

나경원 마이크 수차례 끈 61년 만에 필리버스터 우원식, 강제 중단
올해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9일 본회의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에 나선 지 13분 만에 우원식 국회의장이 마이크를 끄면서 고성과 항의, 막말로 아수라장이 됐다.
국회가 본회의를 열고 64건의 법안을 처리할 예정이었지만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허용 여부를 놓고 파행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시작한 지 10여 분 만에 마이크를 껐고 국민의힘은 “민주당 출신 의장의 의회 독재”라고 반발했다.
우 의장은 “법안과 상관없는 발언을 하기 때문”이라고 맞섰다. 나 의원이 발언을 이어가자 우 의장은 회의 시작 2시간여 만에 정회를 선포했다.

이날 여야 대치는 가맹사업법 개정안에 대해 나경원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시작하면서 시작됐다. 프랜차이즈 가맹점 사업자 단체의 법적 지위와 교섭 권한을 강화하는 법안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4월 다수 의석으로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하면서 국회 담당 상임위원회(정무위)와 법사위 의결을 거치지 않고 본회의에 상정됐다.
나 의원이 인사를 생략하고 연단에 올라가자 우 의장은 "국회의장에게 인사하는 것은 국민에게 인사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러나 나 의원은 사과 없이 "사법파괴 5대 악법, 입틀막 3대 악법을 철회해달라. 대장동 항소 포기에 대한 국정조사를 실시해달라"며 포문을 열었다.
우 의장이 "의제에 맞는 발언을 하라"며 제지했지만, 나 의원은 "삼권분립을 파괴하는 입법 내란세력"이라며 정부·여당에 대한 비난을 이어갔다.
그러자 우 의장은 "회의 진행을 방해하고 있다"며 국회법 145조의 회의 질서 유지 조항을 근거로 오후 4시 39분께 마이크를 끄도록 했다.
그는 "저는 아주 의회주의자"라며 "지금 나 의원의 태도는 사회자를 무시하고 의사진행을 방해할 목적으로 나왔다고 밖에 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나 의원은 “국민의힘은 가맹사업법에 관해 찬성 입장”이라며 “그러나 민주당이 무도하게 8대 악법(惡法)을 통과시키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철회 요구를 위해 필리버스터를 시작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내란전담재판부, 법왜곡죄, 대법관 증원, 4심제 도입,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 대상 확대 법안 등을 ‘사법파괴 5대 악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정당 현수막 규제, 유튜버 징벌적 손해배상제, 필리버스터 제한 법안 등을 ‘국민 입틀막 3대 악법’으로 본다.
사회를 보던 우 의장은 13분 만에 나 의원의 마이크를 껐다. 우 의장은 또 “의제와 관련이 없거나 허가받은 발언의 성질과 다른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의장석으로 찾아가 “이게 바로 독재다” “제2의 추미애냐. 우미애(우원식과 추미애)”라고 항의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 소속인 추미애 법사위원장이 법사위를 일방적으로 운영한다고 비판해왔다. 고성 끝에 나 의원 발언이 재개됐으나 우 의원장은 “의제와 관련 없다”며 재차 마이크를 껐다.
국민의힘 곽규택 원내수석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국회의장이 대한민국 사상 처음으로 국회의원 발언을 방해하고 마이크를 끄는 있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2016년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 당시 의제 이외 발언을 한 민주당 의원과 관련해 이석현 국회 부의장이 “어떤 것이 의제 내이고 어떤 것이 의제 외인지 구체적으로 식별하는 규칙이나 법 조항은 없다”고 한 발언을 들어 우 의장을 비판했다. 결국 나 의원이 연단에 있는 상황에 우 의장은 “정상적인 토론이 안 된다”며 정회를 선포했다.
우 의장은 연단에 복귀한 나 의원이 국회의장을 향한 인사를 또 건너뛰었다고 지적했고, 국민의힘은 발언권 박탈에 대한 재발 방지 약속과 사과부터 하라며 맞받았다. 그러자 민주당 의석에서는 "내란 동조 정당", "적반하장" 등의 비난이 터져 나왔다.
나 의원은 오후 8시 53분 필리버스터를 재개했으나 마이크는 9시 54분께 또 강제 종료됐다가 10시 29분 다시 켜졌다.
우 의장은 나 의원에게 "아무 이야기나 하나. 일부러 파행시키려고 이러는 거냐"고 쏘아붙였다.
그러자 국민의힘 곽규택 의원은 '국민 여러분, 정당한 무제한 토론을 국회의장이 마이크를 꺼서 방해하고 있습니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뛰어나와 나 의원 곁에서 침묵시위를 벌였다.